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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진 자, 구레네 시몬의 만남

by 너와나 클래스101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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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여정은 인류 구원의 핵심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한 인물, 바로 구례네 사람 시몬은 짧지만 남긴 인물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본래 예수님과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면서 역사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진 시몬의 모습은 단순한 우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짊어졌던 그 십자가는 곧 복음의 길을 예표 하는 상징이 되었고, 시몬은 그 길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짧은 만남을 통해, 고난의 길에서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쓴 포도주를 거절하신 예수

1. 쓴 포도주의 의미와 배경 당시 로마인들은 십자가형을 집행할 때 죄수들에게 쓴 포도주—즉, 쓸개(혹은 몰약)가 섞인 포도주를 주곤 했습니다. 이는 고통을 일부 무디게 해주는 일종의 진통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도 고통받는 자에게 자비의 차원에서 마취 성분이 섞인 음료를 제공하곤 했습니다(잠언 31:6 참고). 예수님께 이 포도주가 제안된 것은 그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시도였지만, 그것은 또한 그분이 십자가의 고통을 온전히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유혹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의 거절: 고통을 피하지 않으심 예수님은 그것을 "맛보셨지만 마시고자 하지 않으셨다" (마태복음 27:34). 이는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하셨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분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완전한 고통과 절망, 영적 단절을 직접 경험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쓴 포도주로 고통을 덜었다면, 그분의 희생은 "부분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을 완전히 감당함으로써 우리를 위한 대신 속죄를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3. 참된 순종과 순전한 희생의 본보기 예수님의 거절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려는 순전한 헌신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방식으로 고통을 줄이기보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고통을 마주하셨고, 그 고통 속에서조차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신 참된 메시아이셨습니다.

 

4. 그리스도인의 삶과 고난에 대한 교훈 오늘날 우리는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쓴 포도주 거절 사건은 우리에게 신앙의 고난이 절대 헛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때로는 고통스러운 길을 마주할 수 있지만,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고, 그 길 끝에는 부활과 영광이 기다린다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우리가 신앙의 길에서 편안함보다는 순종을, 안정보다는 진리를 추구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5.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5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완전히 감당하셨기에,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그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참된 위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진리와 사랑으로 감당하셨고, 쓴 포도주를 거절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이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나누어진 예수의 옷

1. 예수님의 옷을 나눈 병사들 – 예언의 성취 마태복음 27장 35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이 짧은 구절은 단순한 묘사 같지만, 실상은 시편 22편 18절의 예언을 정확히 성취하는 장면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들이 내 옷을 나누며 내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단순한 비극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 역사 가운데 철저히 예언되고 준비된 사건임을 증명합니다.

 

2. 수치의 상징: 벌거벗기신 예수 로마의 십자가형은 죄수에게 최대의 수치와 모욕을 주기 위한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단지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사람들의 조롱 속에 내던져졌습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진 그분은 인간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처럼,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수치심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옷조차 빼앗기셨습니다.

 

3. 세상의 욕망과 무감각함의 그림자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속에 계셨지만, 병사들은 그 옷을 제비 뽑는 데 몰두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경외감은 전혀 없이, 오직 물질적인 이익과 자기 몫 챙기기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예수님의 고난에 무관심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그 자리에서조차 사람들은 자기 유익과 세속적 관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우리가 주님의 고난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4. 예수님의 옷 – 정체성과 권위의 상실 성경에서 옷은 종종 신분, 권위, 영광을 상징합니다. 왕은 왕의 옷을 입고, 제사장은 거룩한 예복을 입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 참 왕으로 오셨지만, 십자가 위에서는 그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모든 것까지 벗겨진 채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시고 철저히 낮아지셨다는 상징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라고 표현하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참된 사랑임을 설명합니다.

 

5. 구속의 상징으로서의 나눠진 옷 한편, 예수님의 옷이 나누어진 사건은 그분의 희생이 모든 사람에게 나눠지는 은혜가 되었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분의 몸은 찢기셨고, 그 피는 흘렀으며, 그 은혜는 각 사람에게 나누어지는 구속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나누어진 옷처럼,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은혜의 몫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은혜로 받은 의의 옷이며, 새로운 생명의 상징입니다.

조롱받는 구세주 예수

1. 지나가는 자들의 조롱 – 외면당한 진리 마태복음 27장 39절에 보면,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자세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는다”고 했던 말씀을 비꼬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왜곡한 것으로, 진리 앞에서 사람들의 영적 무지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참된 성전이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였지만, 그 진리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분을 비웃으며 외면했습니다.

 

2. 종교 지도자들의 조롱 – 위선과 불신의 절정 40~42절에서는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 곧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이미 보았고 들었지만, 자기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 진리를 부정했습니다. 그들의 조롱은 단순한 불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는 자들이 가장 앞장서서 그분을 부정한 신앙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침묵과 인내는, 그들의 조롱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는 겸손과 희생의 모습이었습니다.

 

3.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유혹 – 고난 회피의 시험 지도자들과 무리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고 조롱했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와 유사한 방식의 유혹입니다(마태복음 4장 참고). 사탄은 예수님께 자기 능력을 증명하라고 유혹했고, 여기서도 조롱자들은 십자가를 회피하고 자신을 구원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한번 그 유혹을 거절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구세주의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그들이 요구한 ‘기적’은 곧바로 보이지 않았지만, 참된 기적은 부활이라는 더 큰 권능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4.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에 대한 조롱 – 신성 모독으로 되갚은 선언 43절에서 조롱자들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언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비웃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십자가는 인간 눈에 보기엔 저주요 패배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순종의 순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자리였습니다.

 

5. 강도들의 조롱 – 철저한 외로움 속의 구속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마저 예수님을 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44절). 이는 예수님이 고난받는 순간에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모든 인간으로부터 철저히 조롱과 멸시를 받고 계십니다. 이 모습은 **이사야 53장의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멸시당한 자”**라는 고난받는 종의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외로움 속에서, 예수님은 인류를 향한 구원의 문을 열고 계셨습니다.

결론

구례네! 시몬은 뜻하지 않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짊어졌습니다. 그는 단지 지나가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억지로 지게 된 십자가였지만, 그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고, 아마 그의 가족과 후손에게까지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는 시작점이 되었을 것입니다(마가복음 15:21에 나타난 그는 아들들의 이름을 주목하십시오). 시몬의 모습은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작은 시몬의 자리를 허락하셔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무겁고 고통스럽지만, 그 길은 영광의 길이며, 진정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이 억지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순간에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담겨 있음을 기억합시다. 시몬처럼, 우리도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