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공존합니다. 진짜 금과 가짜 금,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처럼, 외형만으로는 쉽게 구별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신앙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삶의 열매를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진짜 신앙을 가진 자인지, 혹은 겉모습만 그럴듯한 이리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매'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열매를 통해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겉모습이 아닌 삶의 열매로 평가받는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교류 16:7). 사람은 외형을 중시하고 겉으로 보이는 행위에 큰 비중을 두지만,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삶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거짓 선지자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중요한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마 7:16). 이는 단지 거짓 선지자만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주시는 자기 점검의 기준입니다.
1. 겉모습은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를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고 표현하십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온유하고 순종적인 자처럼 보이지만, 속은 탐욕과 자기중심으로 가득한 존재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신앙인의 옷을 입고 있으나, 그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겉으로는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봉사도 하지만, 삶 속에서 미움과 시기, 분노, 거짓과 같은 열매가 맺히고 있다면, 그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보이는 신앙’이 아닌 ‘살아내는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2. 열매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이어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고 물으십니다. 식물은 그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한 사람은 선한 열매를, 악한 사람은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 열매는 말이 아니라 삶의 실제적인 결과입니다. 말하는 태도, 돈을 사용하는 방식,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모습, 감정이 격해질 때의 반응,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 — 이러한 일상 속 작은 결정과 반응들이 바로 우리가 맺는 열매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신앙을 가졌는지는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 소리가 아니라, 직장에서, 가정에서,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어떻게 사는지에서 나타납니다.
3. 삶의 열매는 시간과 함께 반드시 드러난다 나무는 심은 즉시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진정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은 연기를 할 수 있어도, 결국 삶은 열매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마 7:17-18).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나무 자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결국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4. 하나님의 기준은 ‘삶의 열매’다 본문 21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매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나더러 줄여 주며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 이 장면은 우리에게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입술의 고백이나 겉모양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즉 실제적인 열매가 구원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23). 이러한 성품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가? 그것이 곧 우리가 어떤 나무인지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5. 나의 삶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자기 점검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겉모습과 외형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신앙은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나는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한 신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맺고 있는 열매는 성령의 열매인가, 아니면 육체의 열매인가? 삶의 열매는 단지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과 중심, 그리고 지속적인 선택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려는 삶은 결국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주여 주여 만 외친다고 천국에 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나더러 줄여 주며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이 말씀은 단순한 경고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을 꿰뚫는 매우 날카로운 선언이며, 우리 신앙의 진정성과 실천을 점검하게 하는 무게감 있는 도전입니다.
1. ‘줄여 주어’는 고백이다. 그러나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겉보기에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고, 경건한 언어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이 입술에만 머물고,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주여”를 부르며 예배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 고백 이후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멀어져 있다면, 그 외침은 천국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울리는 꽹과리와 다름없습니다(고전 13:1 참조).
2. 외형적인 종교 행위는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다. 22절을 보면,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겉보기엔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예언하고, 귀신을 쫓고, 기적을 행합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진짜 신앙인”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 이 장면은 무서운 진실을 드러냅니다: 종교적 능력과 열정, 사역의 열매조차도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는 그 어떤 기적도, 은사도, 사역도 천국 입성의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하는 자’라는 표현입니다. 즉, 신앙은 지식이나 말,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거룩함과 순종으로 사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 이러한 삶을 사는 자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변화된 인격과 삶을 원하십니다.
4. 주님의 평가: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적 인식이 아니라, 관계적 친밀함을 뜻합니다. 즉,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 없이 자기 의와 자기 능력만을 의지한 자들에게는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네가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는 선언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에서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종교적 열심히 아닌,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5. 나에게 향한 질문 나는 예수님을 단지 말로만 주인이라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신앙 고백은 삶의 순종과 일치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행하려는 마음과 노력이 내 안에 있는가? 나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구원의 길에 선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매우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나더러 줄여 주며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구절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구원의 본질에 대한 선언입니다. 천국은 단순히 "줄여 주어"라고 외치는 종교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 곧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는 자의 것입니다.
1. 구원의 핵심은 '지식'이나 '열정'이 아닌 '순종'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는 쉽게 착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섬기면 그것이 곧 신앙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중요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 즉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뜻을 따라 내 삶을 바꾸고,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십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1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진짜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행동으로 드러나듯이 믿음도 지식이나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선택과 열매로 증명됩니다.
2.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뜻은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핵심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신 6:5), 이웃을 사랑하며(마 22:39),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요 6:40), 거룩함을 추구하고 죄에서 떠나며(살던 4:3), 감사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며(살던 5:16~18), 선하고 의로운 일을 실천하며(미 6:8) 하나님의 뜻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기준입니다.
3. 행함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이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거나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지, 하나님께 향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 기적과 사역의 결과가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 그것이 천국으로 향하는 길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좁은 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뜻과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두는 것이며, 세상의 가치와 다른 방향으로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마 7:13-14)은 바로 이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넓고 쉬운 길을 택하지만,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구원의 길은, 좁지만 하나님과 함께 걷는 순종의 길입니다.
5. 나는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 신앙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질문입니다. 내 신앙은 말과 감정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구하며, 그 뜻에 따라 살아가려는 몸부림이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용서, 진실함과 겸손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은 때로 불편하고, 나의 본성과 충돌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진짜 제자의 길, 구원의 길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6, 20) 겉모습이 아무리 경건해 보일지라도, 참된 신앙은 삶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입술로는 “줄여 주어”를 외치면서도 삶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면, 그 신앙은 외식(위선)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삶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순종과 변화입니다. 예배와 기도, 말씀 묵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 열매가 인격과 선택, 관계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 각자는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 삶의 열매는 어떤가? 나의 신앙은 말뿐인가, 아니면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가?
나는 좋은 나무인가, 아니면 겉모습만 좋은 나무인가?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외형적인 활동보다 우리의 열매를 보시고 판가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진짜와 가짜는 결국 열매에서 구별됩니다. 우리가 모두 좋은 나무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