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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함을 위한 조건 나를 따르라

by 너와나 클래스101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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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착하게 살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본문에서도 한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는 율법의 계명들을 잘 지키며 살아온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 역시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도덕적으로 큰 흠이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계명을 지키는 삶, 선을 행하는 삶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영생에 이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진정한 온전함과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 대해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말씀하신 이 구절은 단순한 격려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찬양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 문장은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을 요약하는 강력한 복음적 진리입니다. 본문에서 부자 청년은 계명을 잘 지킨 의로운 삶을 자처합니다. 그는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단지 계명을 지키는 외적 행위가 아니라, 전적인 순종과 자기 부인의 삶이 진정한 온전함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섭니다. 왜냐하면 그는 재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도전을 줍니다. 재물은 단순히 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립심, 안전함, 자신의 노력으로 쌓은 성취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기의’를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선한 행동이나 계명 준수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 뒤에 이어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가 더 쉽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부는 하나님의 축복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니 부자가 구원받기 어렵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혼란을 안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단지 부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이 질문은 인류 전체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소망이 있겠는가?” 이때 예수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인간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동시에 선언하는 복음의 정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의롭다고 하실 수 있고, 불가능한 자를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추상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실제로 성경은 수많은 예를 통해 이 진리를 증명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말을 잘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출하셨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언제나 부족하고, 우리의 의도는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십니다. 이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무능함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할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가진 조건, 상황, 과거, 부족함은 구원의 장애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1. 당시 유대인의 생각과 ‘먼저 된 자’의 의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며, 율법을 지키는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외적으로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먼저 된 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복해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자만심을 뒤흔드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사람이 판단하는 서열과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선언입니다.

 

2. 예수님 당시의 실제 사례: 부자 청년과 제자들 이 구절은 부자 청년 이야기의 결론 부분에서 나옵니다. 부자 청년은 율법을 잘 지켰고, 일상적으로 ‘먼저 된 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일상적으로는 지위도, 돈도, 명예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대조는 세상의 질서와 하나님의 질서가 얼마나 다른지를 잘 보여줍니다.

 

3.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공로나 조건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먼저 된 자’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의 자격을 내세우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응답으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태복음 20장)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하루 종일 일한 자나, 마지막 한 시간만 일한 자나 동일한 품삯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공로의 질서가 아닌, 은혜의 질서임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4.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이유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 자신이 부족함을 아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일상적으로는 나중 된 자,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응답하면 하나님의 눈에는 그가 오히려 먼저 된 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마 23:12)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겸손, 순종,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 우선되는 나라입니다.

 

5. 우리에게 주는 교훈 나는 스스로 ‘먼저 된 자’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겸손히 ‘나중 된 자’의 자리에 서 있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도 내가 누리고 있는 직분, 경험, 신앙 연수가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는 언제든지 ‘먼저 된 자처럼 보이지만 나중 되는 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먼저 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시선과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늘의 보화를 얻는 길

1. 선한 일을 통한 구원이라는 오해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이까?”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보여줍니다. 마치 영생은 내가 무엇을 해서 얻는 보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질문을 바로잡으십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즉, 선함의 기준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있고,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습니다. 구원은 선한 일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에 대한 순종의 열매입니다.

 

2. 계명 준수는 시작일 뿐, 목적은 아니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십계명 중 일부를 언급하시며,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등은 모두 도덕적이고 인간관계와 관련된 계명들입니다. 청년은 “이 모든 것을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네가 온전해지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단순한 기부 요청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마음 중심, 즉 재물에 대한 집착과 자기 의의 기반을 흔드신 것입니다. 계명 준수는 경건의 출발점이지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유와 자아까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늘의 보화를 얻는 길입니다.

 

3. 하늘의 보화는 ‘내려놓음’과 ‘따름’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세 가지를 명하십니다: 소유할라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이 세 가지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타인을 섬길 수 없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늘의 보화는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을 놓을 때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모으는 것이 부요함이고, 쌓는 것이 성공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나누고, 버리고, 따르는 것이 진정한 부요함입니다.

 

4. 하늘의 보화는 일시적 보상이 아닌 영원한 상속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하늘의 보화는 이 땅의 보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이 보화는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영생을 얻는 것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는 영광에 참여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과 만족 입니다.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무엇을 얻을 이까?”라고 물을 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

 

5. 세상의 가치와 하늘의 가치 역전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하늘의 보화를 얻는 길은 세상이 추구하는 길과 정반대입니다. 세상은 힘 있고, 많이 가진 사람을 높이지만, 하나님은 겸손하고 순종하며 내려놓는 자를 높이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늘의 보화를 얻기 위해 원한다면,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길, 즉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은 단지 한 개인에게 주신 특별한 요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제자에게 향한 부르심입니다. "하늘의 보화"는 우리가 모두 갈망하지만, 그 길은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이 땅의 보화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하늘의 보화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일시적인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영원한 가치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 부인의 길이며, 순종의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상속과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진정 하늘의 보화를 갈망하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 주님의 부르심 앞에, 나는 어떤 태도로 반응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초대는 오늘도 유효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생명과 하늘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땅에 집을 짓기보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