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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하는 자들에게 임할 화

by 너와나 클래스101 2025.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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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율법을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셨을 뿐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거짓 경건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는 엄중한 선언을 반복하시며 그들의 외식(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태도)을 고발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경건히 무엇인지, 그리고 그릇된 신앙이 어떤 심판을 초래하는지를 강하게 경고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겉은 깨끗하나 속은 부패한 그들의 실상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위선적인 종교인의 모습이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자초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경고는 단지 과거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이 반성하고 되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잔의 비유

1. 겉은 깨끗하나 속은 더러운 종교인의 실상 (25절)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마음과 삶이 탐욕과 방탕, 즉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정결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말씀입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종교적 의무를 다하며 경건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권력, 명예, 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외식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한지를 비유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2. 잔의 비유가 주는 영적 교훈 잔은 겉과 속이 모두 사용되는 그릇입니다. 겉은 보기 좋게 닦였지만, 그 안이 더러우면 아무리 귀한 음료라도 담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삶도 겉모습만 단정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며, 그 마음과 동기를 보십니다. 겉으로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봉사를 많이 하더라도, 내면에 탐욕, 질투, 위선이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깨끗한 그릇이 아니라 부패한 그릇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진정한 신앙은 내면의 정결에서 비롯된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3. 먼저 속을 깨끗하게 하라 (26절) 예수님은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참된 변화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속사람이 정결하면 그 삶의 열매와 행동도 자연스럽게 바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내면이 썩었는데 겉모습만 꾸민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종교적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진정한 회개와 내면의 갱신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당시 바리새인들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영적 원리입니다.

 

4.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적용 오늘날 우리도 바리새인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의 활동, 외적인 봉사, 남들 앞에서 말과 태도는 신앙의 일부일 수 있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 내 마음속의 순결함,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겉으로만 신앙인이 아닌가?", "나의 마음은 주님 앞에서 깨끗한가?", "나는 탐욕과 자기 중심성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의 이 경고는 우리가 회개와 성찰로 나아가게 합니다. 먼저 속을 깨끗이 할 때, 겉도 진정으로 변화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외식

1. 회칠한 무덤의 비유와 상징성 (27절)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셨습니다. 회칠은 유대 전통에서 무덤을 식별하기 위해 겉을 하얗게 칠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는 무덤에 가까이 가서 부정해지는 일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예수님은 이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선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겉은 깨끗하고 보기 좋게 보이나, 실상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는 말씀은, 위선적인 신앙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혐오스러운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2. 겉으로는 의로우나 속은 부패한 자들 (28절) 예수님은 이어서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종교적 형식주의의 핵심적인 위험을 보여줍니다. 외적인 행위나 언행은 사람들에게는 칭찬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에, 속이 부패한 신앙은 결코 의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외식’은 헬라어로 hypokrisis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연극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외식은 신앙의 연기이며, 진정한 믿음이 아닌 허상입니다.

 

3. 왜 외식이 하나님께 큰 죄인가? 외식은 단순한 실수나 미성숙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려는 시도이자 사람을 기만하는 죄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삶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며,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하고 신앙의 본질을 흐립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마음을 원하시며, 번제보다 순종을 기뻐하십니다(사무엘상 15:22).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진실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속으며, 신앙을 자기 의와 체면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4. 우리 삶 속의 ‘회칠한 무덤’은 무엇인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신앙적으로 보이기 위해 말과 행동을 포장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기도, 순종, 정직, 사랑과 같은 신앙의 본질은 놓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직분을 맡고 성경을 읽지만, 그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미움이나 세속적 욕망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회칠한 무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각자가 겉모습이 아니라 속사람의 거룩함과 진실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엄중한 권면입니다.

 

5. 외식을 버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나아가기 진정한 회복은 외식을 벗고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정직하게 세우고, 회개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면을 다스리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한 사람, 중심이 깨끗한 그릇이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부름은 단지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심판을 피하고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는 생명의 길입니다.

의로운 피의 심판이 이 세대에 임하리라

1. 외식의 절정: 선지자의 무덤을 꾸미는 위선 (29–30절)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할 때 있었더라면 그들과 같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이는 겉으로는 선지자를 존경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죄의 본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말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주장하는 외식의 표현일 뿐이며, 그 마음속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의를 붙드는 완악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 선지자들을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 (31절)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듣고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를 부정하면서도, 동일한 영적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결국 그들도 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계승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미워하고, 자신에게 불편한 진리를 거부하며, 그것을 전한 자들을 핍박하는 자세가 여전히 그들 안에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3. 조상의 죄를 채우는 자들 (32절) 예수님은 이어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있지만, 죄악의 분량이 채워지면 마침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세대가 조상들의 죄를 단순히 이어받는 것을 넘어서, 그 악을 완성하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절대 무시되지 않으며, 죄가 쌓이면 마침내 심판이 도래합니다.

 

4.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33절) 예수님은 매우 강한 표현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그들이 거짓되고 파괴적인 존재임을 드러내는 말로, 사탄의 본성과 닮은 자들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이미 심판이 정당함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척하지만 가득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형벌이 반드시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5. 보내심. 받은 자들을 핍박하는 세대 (34절)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선지자들, 지혜 있는 자들, 서기관들을 계속 보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 세대들처럼 이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이고,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도시마다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기회를 반복적으로 거부하고, 결국 그 책임이 이 세대에 집중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책임의 누적은 더 큰 심판을 불러오게 됩니다.

 

6. 아벨에서 사가래까지: 의로운 피의 총합 (35절) 예수님은 심판의 범위를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곧 성경 전체로 확장하십니다.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래의 피까지”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인 모든 피의 책임이 이 외식하는 세대에 돌아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비난이 아니라, 영적 책임의 집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의로운 피를 헛되이 흘리게 하지 않으시며, 그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7. 이 세대에 돌아갈 심판의 선언 (36절) 결국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끝났으며, 이 세대는 가장 많은 빛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죄를 지은 세대가 되었기에, 심판이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선언은 단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심판의 실제성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가장 강력한 책망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며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조상들의 잘못을 부정했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과 불법,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한 책임이 결국 “이 세대에”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그 시대의 사람들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외면하며, 입술로는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삶으로는 하나님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도 겉으로는 경건하지만 여전히 탐욕과 자 기의로 가득 차 있다면, 동일한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의로운 피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기억되며, 그 피에 대한 책임은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경고를 두려움으로 듣고, 회개와 진실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겉이 아닌 속이, 형식이 아닌 중심이 깨끗한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며, 의인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심판이 아닌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