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를 통해 믿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더 많은 증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에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구원의 계획과 인간의 불신앙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실 십자가와 부활의 놀라운 예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참된 믿음은 무엇으로 세워지는지, 그리고 요나의 표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악한 세대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
1. 표적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의 모습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믿기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체면을 지키는 데에 몰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표적과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 자신들의 불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태도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규정하셨습니다.
2.여기서 ‘악하다’는 말은 도덕적 부패를, ‘음란하다’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린 영적 배신을 가리킵니다. 즉, 표적을 구하는 것은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태도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표적이 아닌 말씀으로 믿어야 할 세대 하나님은 이미 충분히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 율법,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표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외적인 표적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3.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야 믿는" 신앙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보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서도 예수님은 도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나의 표적: 죽음과 부활의 예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오직 "요나의 표적"만을 제시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도망하다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 동안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려 너는 웹으로 보내셨고, 요나는 너는 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고,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4.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사건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도 결정적인 표적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를 구원하기를 원한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표적은 눈앞의 기적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회개와 순종이 참된 응답이다 요나의 전도를 들은 너는 왜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회개했습니다.
5.왕부터 백성에게 이르기까지 금식하고, 죄를 뉘우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수많은 기적을 베푸셨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끝까지 완악했습니다. 너는 왜 사람들이 심판 날에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는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표적을 요구하기보다, 이미 주어진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응답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표적을 보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할 때 자라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가족
1. 혈연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 개념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 서서 당신을 찾습니다"라고 전했을 때,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그리고는 제자들을 가리키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가족을 외면하거나 혈연관계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새로운 차원의 가족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은 혈연을 초월하여 하나로 연결된다는 놀라운 진리를 예수님은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참된 가족이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입니다. 참된 가족은 단순히 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관계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3.그런 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교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참된 가족 개념은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며, 실제 가족처럼 서로 사랑하고 돌보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을 보면, 그들은 물건을 서로 나누고, 함께 식사하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맺어진 이 새로운 가족 공동체는 세상과 구별된 사랑과 헌신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4.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참된 가족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나이, 직업, 배경, 혈연을 초월하여,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입니다. 이 가족 안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짐을 나누어지며,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적 결단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나의 형제들이냐?"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한 감정이나 외적인 행위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 — 그것이 참된 가족이 되는 길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자가 진정한 가족
1. 예수님의 말씀: 가족에 대한 새로운 기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시던 중, 많은 무리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그의 육신의 가족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가족, 특히 어머니와 형제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누군가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서 당신을 찾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이 그들을 우선시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 말씀은 혈연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하신 것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또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나더러 줄여 주며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나 외적인 행위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3.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뜻을 따라 삶으로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이 순종이야말로 예수님과 우리가 가족으로 연결되는 조건입니다. 영적 가족의 공동체성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나 종교적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함께 추구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의 가족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부르며, 실제 가족처럼 돌보았습니다. 그들은 물질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박해 속에서도 서로를 지켰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4.그 안에는 나이, 배경, 지위, 직업의 차이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가족이라는 은혜의 부르심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족이라 부르시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과 책임, 관계의 깊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우리의 "형제"로 모시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가족 됨은 우리의 정체성을 바꾸어 놓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되었을지라도, 주 안에서는 누구든지 사랑받는 자녀이며,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이 부르심은 동시에 도전이기도 합니다. 내 뜻과 내 감정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삶. 그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과 참된 관계를 맺으며, 그분의 가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에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다른 표적이 없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없는 기적을 보여주셔서 억지로 믿게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결정적이고 충분한 표적을 주셨고, 이제는 그 표적을 통해 믿음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보내고 살아나 너는 웹에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이 표적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증거나 조건을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여주십시오"**가 아니라 **"믿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더 확실한 증거를 달라"**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복음 앞에 **"회개하고 순종하겠습니다"**라는 응답입니다. 요나보다 더 크신 이가,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우신 이가 우리 가운데 오셨고, 그분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믿고 따르라." 우리는 이 표적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날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