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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일 것이 없느니라

by 너와나 클래스101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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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람들은 종종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나 특별한 표적을 통해 믿음을 세우고자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분께 특별한 표적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의심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시며,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깊은 영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나의 표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왜 예수님께서 이 표적만을 제시하셨는지 살펴보며,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밖에서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족은 개인의 신분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결속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어, 영적인 가족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동생들이냐?" 이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이라는 자연적 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영적 순종의 관계를 더 깊고 본질적인 것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며 선언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태복음 12:50)

 

1.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시고(담던 2:4),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시며(살던 4:3),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살던 5:18). 또한 하나님의 뜻은 단순한 도덕적 규범을 넘어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마 22:37–39).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마 6:33), 곧 세상의 성공이나 명예보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요구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가 진정한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은 때로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마 16:24)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때로는 고난과 외로움을 감수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길이,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마 5:13–16). 우리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3.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적 가족의 축복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을 자신의 어머니, 형제, 자매로 여기셨습니다. 이는 상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수님과 깊은 친밀함을 누리는 관계, 하나님의 집안에 속하는 특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인도하심을 누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고아처럼 버림받는 것 같은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는 결코 외롭거나 고립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자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상속자가 됩니다(롬 8:17).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은 일시적인 희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영원한 영광과 상급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맺는말처럼 자연스럽게 연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말씀을 삶으로 옮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귀로만 듣는 믿음이 아니라, 손과 발로 살아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더 큰, 더 확실한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신중하게 진리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완악해져 있었고, 믿지 않으려는 의지가 더 강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고도 깊은 답변을 주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39)

 

1. 표적을 구하는 세대의 문제점 예수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여기서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음란하다'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세상과 정욕을 따르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표적을 구하는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믿기 위해 표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기 위해 구실을 찾았던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리에 있었고, 눈앞에 임한 진리를 거부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증거를 보여주세요." "기적이 일어나야 믿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표적을 통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롬 10:17).

 

2. 요나의 표적이 의미하는 것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치다가 큰 물고기 배 속에 삼켜져, 사흘 밤낮을 그 속에서 있다가 살아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 하는 표적이었습니다. 요나가 너는 웹에서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이방인인 너는 왜 사람들이 회개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는 회개와 구원을 길이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외적인 표적이나 기적을 늘어놓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크고 결정적인 표적, 곧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 그리고 구원의 계획이 명확히 드러난 것입니다.

 

3. 표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표적을 넘어 믿어야 한다 진정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증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수많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지만, 그 기적들은 믿음을 강제하는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었지, 사람들의 의심을 억지로 꺾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끊임없는 증거 요구를 모두 다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과 약속을 주시고, 그 말씀 위에 서서 믿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표적을 구하는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믿겠습니다"라는 식의 신앙은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확실한 표적을 바라보며, 말씀에 근거한 신뢰로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마무리 연결 (맺는말처럼): 예수님께서 주신 가장 크고 완전한 표적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증거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나의 표적을 기억하며,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자가 참된 가족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그분께 전합니다.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46–47) 가족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혈연적 관계는 유대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동생들이냐?" 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태복음 12:50) 이 말씀은 단순히 가족을 무시하거나 관계를 거절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더 깊고, 더 본질적인 가족 공동체를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영적 가족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참된 관계의 기준이다 인간 세상의 기준은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은 눈에 보이는 연결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외형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내적 태도로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나의 가족이다"라고 선언하셨을 때, 그것은 세상의 가족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소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습니다. 단순한 제자, 청중, 추종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안,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혈통이나 인간적인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는 순종이 참된 가족의 조건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은 여러 형태로 성경에 나타납니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뜻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담던 2:4). 성화의 뜻 :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살던 4:3). 감사의 뜻 : 모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살던 5:18). 결국 하나님의 뜻은, 그분을 믿고,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머리로만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단순한 감정이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3.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영원한 가족 공동체에 참가하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누리는 자들 참된 가족이 된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와 인도하심 아래 살아갑니다.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로마서 8:17). 진정한 소속감을 누리는 자들 세상에서는 외롭고 고독할 때가 있어도,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는 절대 버림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단순히 제자나 신도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사랑은 세상의 어떤 조건을 넘어서는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마무리 연결 (맺는말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혈연이나 외적인 조건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가족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향해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39) 이는 표적을 무조건 거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위대한 표적, 즉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사건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 사흘 동안 있었던 것처럼, 이제 되신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무셨다가 승리의 부활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표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결정적 증거입니다.

 

우리는 표적을 통해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확실한 하나님의 표적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적이나 더 큰 증거가 아닙니다. 이미 선포된 복음을 신뢰하고, 그 복음 안에서 회개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 —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따르는 자만이 참된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부활의 생명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표적을 구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 증거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것이 우리 믿음의 중심이며, 우리 구원의 확실한 표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