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유월절 준비와 최후의 만찬

by 너와나 클래스101 2025. 5. 14.
반응형

서론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여정 가운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마지막 유월절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깊은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는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로,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시면서, 그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가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순종, 제자들의 준비, 유다의 배신, 그리고 새 언약의 선포가 한 자리에서 어우러진 장면입니다. 오늘 통해, 우리도 주님 앞에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배신 예고

1. 하나님 계획 안에 있는 충격적인 선언 (20~21절)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시던 중,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예측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이미 예정된 일,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책임이 수반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이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제자들에게 알리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가진 무게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충격에 빠졌고,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예수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들 중 누군가가 주님을 배신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믿기 어려운 공포와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2. 자신을 돌아보는 제자들의 반응 (22절) “주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하나같이 근심하며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무도 자신 있게 부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반응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보여줍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 깊은 곳까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스스로를 완전히 의롭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오히려 겸손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가까이에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배신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3. 배신의 징후를 알려주시는 예수님 (23절)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물리적인 동작이 아니라, 함께 식사를 나누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배신을 의미합니다. 가장 신뢰받고, 가장 사랑받은 자가 배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이 장면은 참으로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은밀한 부분까지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죄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적인 경건함보다도, 내면의 진실함을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4. 배신자의 무서운 운명 (24절)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단순히 유다 개인의 불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팔아넘기는 행위는 영원한 심판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죄라는 사실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를 무시하고 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혜이지만, 거절할 때 그것은 심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5. 끝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은 유다 (25절) 마지막으로, 유다는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유다의 말투는 위선과 외식의 냄새가 납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팔기로 결정했으면서도, 여전히 제자들의 무리에 섞여 있고,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짧고 단호합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이 대답은 유다의 내면을 꿰뚫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진작부터 그의 마음을 알고 계셨고, 그럼에도 기회를 주셨지만 끝내 회개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결론 예수님의 배신 예고는 단순히 유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경고이자 초대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음은 멀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욕심과 죄의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고, 겸손히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통해, 우리도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는 질문 앞에 진실하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자리로, 은혜의 자리로 다시 나아가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팔 자에 대한 경고

1.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만, 인간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의 성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이어 말씀하십니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가운데서도, 그 일을 악한 동기로 행한 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즉, 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쓰임 받았지만, 자신의 탐욕과 불신앙으로 선택한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이 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지만, 그 계획 속에서 악을 택한 자에게는 분명한 심판이 따른다는 경고입니다.

 

2. 죄의 무게를 깨닫지 못한 자에게 임하는 화 예수님은 유다에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무거운 경고 중 하나입니다. 태어남 자체가 축복으로 여겨지는 유대 문화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았을 것”이라는 말은 그의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파는 일은 단순히 한 사람을 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등지고, 구원의 기회를 저버리는 죄입니다. 이는 회개 없이 죽는 자의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의 실재를 암시하는 경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유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거절하고 자신의 이익과 세상과 죄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즉,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외면하거나 부인하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도 주시는 심각한 경고입니다.

 

3. 회개의 기회를 외면한 결과는 치명적이다 유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듣고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은 삼십에 넘겨주기로 작정한 상태였고, 예수님의 직접적인 경고 앞에서도 끝내 자기 죄를 외면하고, 고집스럽게 죄의 길을 선택합니다. 주님은 유다에게 여러 차례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발을 씻기실 때도, 함께 떡을 떼실 때도,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을 때도, 예수님은 회개의 문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 기회를 모두 흘려보냈습니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회개의 기회를 잃는 것입니다. 죄인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죄를 외면하고 은혜를 거절하는 자는 용서의 은혜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나는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지는 않았지”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보다, 혹시 나도 유다처럼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 포인트로 본론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책임 죄의 무게와 그에 따른 심판 회개의 기회를 놓친 자의 비극

성찬을 통한 예수님의 희생 예고

1. 떡을 떼어 나누심 – “이것은 내 몸이니라” (26절)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떡은 예수님의 찢기실 육체, 곧 십자가에서 고난 겪으실 그 몸을 가리킵니다. 그분의 몸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찢기고 희생될 것입니다. 떡을 떼는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이 물질로, 실제로 나타난 사건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실제로 내어주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떡을 받을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떡이 값없이 주어졌지만, 예수님께는 대가를 요구하는 희생이었다는 점입니다.

 

2. 잔을 들고 나누심 – “이것은 나의 피니라” (27~28절) 예수님은 잔을 들고 감사기도 하신 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피는 구약에서 생명을 의미하며, 동시에 속죄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22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을 자신의 피라고 하신 것은, 곧 자기 죽음을 통해 새로운 언약이 시작되며, 그 피가 죄 사함의 근거가 될 것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이루어질 완전한 구속의 피이며, 예수님의 피는 구약의 희생 제사처럼 반복되지 않고,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죄를 씻는 능력을 갖춥니다 (히브리서 10:10~14). 따라서 성찬에서 잔을 받을 때, 우리는 단순히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흘리신 그 보혈의 은혜를 기념하고, 그 희생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3. 많은 사람을 위한 희생 – 대속의 복음 (28절) 예수님께서는 이 피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이 개인적인 죽음이 아닌 대신 속죄 적인 희생임을 분명히 합니다. 즉, 예수님의 피는 단지 몇몇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인류 전체를 향한 구원의 문을 여는 피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표현은, 그 피가 모든 사람에게 충분히 흘렸지만, 그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유효하게 적용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포함합니다.

 

이 희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의인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고 성찬은 그 복음의 진리를 우리 몸과 영혼으로 되새기고 참여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요약 정리 (본론 요약) 떡은 찢기실 예수님의 몸이며,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의 증거입니다. **잔(피)**은 죄를 사하시기 위한 대신 속죄의 피, 새 언약의 피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한 희생은 우리 모두에게 향한 구원의 초대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었고, 예수님의 배신 예고와 자기 몸과 피를 나누는 성찬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팔 자가 있음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고, 자기 몸과 피를 내어주며 우리를 위한 대신 속죄의 희생을 이루셨습니다. 그 희생은 과거 유월절 어린 양의 피처럼, 심판을 면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새 언약 아래 살아갈 길을 여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순종과 사랑을 깊이 묵상해야 하며, 그분의 은혜 앞에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성찬을 통해 날마다 복음 안에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분과의 연합을 확인하며, 죄 사함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유월절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 언약의 백성으로,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그분이 다시 오실 날까지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