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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의 고난과 부활의 선언

by 너와나 클래스101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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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 열두 제자를 따로 부르시고 중대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조롱과 채찍질,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겪게 될 것이라는 고난의 예고였습니다. 그러나 그 비극적인 사건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제삼일에 살아나리라”고하심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부활의 소망을 제자들에게 심어 주셨습니다.

 

이 선언은 예수님의 사역 정점이자,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명확히 드러내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의 영광과 지위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섬김과 희생,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신 참된 위대함의 기준을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의 잔과 제자들의 무지

1.세제 대의 아들의 어머니는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합니다.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소서”라는 요청은 단순한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아니라, 당대 유대인의 메시아사상과 제자들이 가진 잘못된 왕국 이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그들은 예수님이 곧 정치적 메시아로서 다윗의 왕위를 회복하실 것으로 믿고 있었고, 그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이 요청은 겉보기에는 간절하고 열정적인 믿음의 표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의 길을 오해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고난과 죽음을 맞이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전히 영광과 권세만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자리와 명예를 먼저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예수님은 그 요청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도다.” 이 한마디는 제자들의 무지를 정확하게 꿰뚫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고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길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잔'은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진노, 고난, 혹은 정해진 운명을 상징합니다.

 

4.예수님이 마실 잔은 곧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겪는 고난의 잔입니다. 이는 아무나 마실 수 있는 잔이 아니며, 단지 권세를 얻기 위한 상징이 아니라, 철저한 희생과 순종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너무도 쉽게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적이고 성급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마치 영광에는 동참하겠지만, 고난에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 반응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대답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자세와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하시며, 그들의 미래에도 고난이 따를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5.실제로 야고보는 후에 순교를 당했고, 요한도 긴 유배의 고난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따라 정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길이 단지 영광과 승리의 길이 아니라, 철저히 낮아지고 섬기고 희생하는 길임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제자들이 구했던 높은 자리는, 오히려 십자가에서 양편에 못 박힌 강도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영광은 고난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늘나라의 자리, 하나님께 달린 것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요청한 세제 대의 아들들과 그들의 어머니에게, 예수님은 단호하면서도 은혜로운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는 이 말씀은 하늘나라의 영광과 위치가 사람의 야망이나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주권: 영광의 자리는 하나님이 정하신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들"이라고 하신 말씀은, 모든 영광과 위치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열심과 헌신으로 더 높은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과 믿음, 순종을 보시고, 당신의 섭리 안에서 각 사람에게 합당한 자리를 예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세상의 기준이나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직분이나 위치에 대한 오해나 갈등이 생길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기준입니다. 모든 자리와 역할은 인간의 요청이 아닌, 하나님의 정하심으로 말미암습니다.

 

2. 인간의 요청은 하나님의 뜻보다 앞설 수 없다. 세제 대의 아들들과 그들의 어머니는 좋은 뜻에서 예수님께 간청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청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는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영광의 자리를 먼저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고난과 십자가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인지, 혹은 내 욕심과 영광을 위한 것인지 깊이 살펴보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되, 당신의 뜻과 계획 안에서 가장 선한 것을 허락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리를 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3. 마련된 자리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늘나라의 자리가 막연하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련된 자들—곧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준비된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영광의 자리는 고난과 헌신, 겸손과 섬김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러셨듯, 먼저 낮아진 자가 높아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자리나 명예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에 합당한 삶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의 자리를 바라는 이들은 먼저 예수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데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 사이의 갈등과 예수의 교훈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구한 세제 대의 아들들의 요청은 다른 열 제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 거를.” 이는 단순한 서운함을 넘어서, 제자들 사이의 경쟁심과 질투심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적인 욕망과 비교임이 얼마나 쉽게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단지 제자들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상황을 교훈의 기회로 삼으시며,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명확히 가르치십니다.

 

1. 세상의 권력 구조를 본받지 말라 (25절) 예수님은 먼저 이방 나라의 정치권력을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 너희가 알거니와.” 이 말씀은 세상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적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세상은 ‘위에 서는 자’를 성공한 자로 여기며, ‘힘 있는 자’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방식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질서: 섬김과 낮아짐 (26–27절)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세상과 전혀 다름을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가르침은 당시 문화와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종은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며, 섬기는 자는 힘과 권리를 내려놓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 자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위가 아닌 섬김의 자세, 권력이 아닌 사랑의 실천, 명예가 아닌 겸손한 마음이 리더십의 기준이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리더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3. 예수님의 본을 따르라 (28절)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삼아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요약한 구절이자, 제자들이 따라야 할 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왕이 아닌 종의 모습으로 오셨고, 끝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며,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간의 갈등을 단순히 조용히 무마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갈등의 순간을 사용하여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낮아지는 데 있으며, 참된 영광은 십자가의 길에서 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기게 하십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자신의 운명을 제자들에게 미리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예고가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정점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당하셔야 할 고난의 자리였지만, 동시에 인류를 위한 구원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그 고난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자리와 영광을 구했습니다.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마음이 흔들렸지만, 예수님은 그 갈등의 한복판에서 하늘나라의 질서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섬김’이 곧 ‘위대함’이며, ‘종의 자리’가 곧 ‘하늘의 자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자기 삶과 죽음으로 몸소 실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은 우리를 ‘섬김의 자리’, ‘희생의 길’로 부르십니다.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부활의 소망이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때, 주님의 영광에도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릅시다. 높아지려 하지 말고, 낮아지기를 선택합시다. 받으려 하기보다, 기꺼이 섬기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리, 참된 영광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질 것입니다.